초반 3분의 우열을 굳이 따지자면 그래도 료토의 라운드였다. 쇼군의 펀치를 예의 미키리(見切り・눈재기, 간격을 눈대중해서 상대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하는 것)으로 피하며 무릎차기 카운터나 견제성 펀치 후 쓸어차기나 발목후리기로 넘어뜨리려는 시도 등 료토의 정제된 가라테 스타일은 언뜻 변함없이 성공적인 듯 했다. 실제로 쇼군의 태클 시도를 잘 방어했고, 두 차례나 쇼군을 넘어뜨리고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왠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으니 경기 초반부터 보였던 쇼군의 러시에 스웨이와 백스텝(앞서 언급한 '미키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다)으로만 대응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직선적인 전후 움직임. 가라테, 특히 쇼토칸 스타일의 간합을 잡는 전형적 특징이다. 단타를 피하기엔 좋지만 큰 스텝워크와 좌우 공격으로 몰아오는 상대에겐 지켜야할 간격이 무너지는 약점을 드러내기 쉽다. 쇼군은 성큼성큼 걷는 듯한 큰 스텝에 맞춘 압박성 연타를 구사한다. 1차전에서 료토가 고전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다른 상대들에게 먹혔던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복싱 스타일의 짧은 스텝워크와 단발성 컴비네이션 또는 레슬링 태클을 구사했기 때문. 아슬아슬하게 뒤로 빠지면서 상대를 끌어들인 후 무리해서 쫓아들어오려다 중심이 기운 상대에게 카운터성 펀치나 무릎 공격을 찔러넣든지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패턴은 펀치를 위주로 하는 UFC 선수들로서는 특히나 휘말리기 쉬운 함정이다. (일본 무도 이론으로 표현하자면, '후의 선'을 넘어선 '선 전의 선'인데, 편의상 여기서는 그냥 익숙한 '후의 선'이라고 하자.) 더불어 큰 오버훅이나 태클로 급하게 접근하려는 상대에게는 뒤로 빠질만큼 빠지면서 압력을 최소화해 받아낸 후 옆으로 돌려던지거나 발을 걸고 되밀어넘기는 스모식 받아치기로 무력화시키는 것이 한동안 료토의 얼굴을 손도 대기 힘든 '용안'으로 만든 비결이었다.

'눈재기'는 단발 공격을 피하기에는 최적의 수단이다, 그러나...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료토의 움직임은 '후의 선'에 필요한 타이밍을 놓치고 어딘지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리해서 선수(先手)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료토의 작전은 지난 경기 때 보였던 약점을 커버하고자 선공을 구사해 쇼군이 마음 놓고 압박해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고, 테이크다운으로 유리한 포인트를 만들어 경기를 리드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억지로 그라운드 공방을 고집하기보다는 탈출하려는 쇼군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일어나며 무릎을 이용한 공격 등을 이용해 역시 포인트를 쌓고, 같은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점점 상대를 초조하게 만든 후 후반부에 리듬이 무너진 쇼군을 결국에는 특기인 '후의 선' 카운터로 잡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을 것이다. 스마트하고 완벽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시행하는 료토의 마음가짐과 몸다룸이 완벽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번 경기와 달리 뭔가 확실한 공격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리듬이 흐트러졌던 것은 아닐까. 평정심을 잃은 결과 료토의 공격은 특유의 날카로운 임팩트를 싣지 못했고, 서둘러 뻗은 주먹과 발은 빗맞거나 튕겨나오는 모습을 보였다. 원하는 간합을 얻지 못하니 포인트에서는 앞서면서도 쫓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흐름을 내준 것이다.


상대를 끌어들이지 못한 채 팔꿈치를 뒤로 배고 주먹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료토,
그것을 보고 오히려 받아칠 준비를 하는 쇼군. 승부는 이 시점에서 갈렸다.


결정적 장면에서의 무릎차기와 이어진 같은 쪽 정권바로지르기도 그랬다. 그나마 무릎차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 멈칫했던 쇼군이 다시 공격해들어올 때를 기다려 받아줬어야 할 주먹이 제 박자를 잃고 말았다.박자를 잃은 지르기는 상대에게 뻔히 보이는 카운터의 제물이다. 정석대로라면 쇼군의 라이트훅에 대한 료토의 카운터 스트레이트가 됐어야 했는데, 어정쩡하게 먼저 주먹을 뻗는 바람에 오히려 반대가 된 것이다. 

특히나 가드를 높이 하지 않는 전통 가라테식 지르기는 안면을 허용하기 쉽고 동작을 눈치채이기 쉽다. 가드를 높이 하지 않는 것은 어깨의 긴장을 줄여주고 몸의 정중선을 따라 뻗는 전통가라테 특유의 빠르고 날카로운 정권지르기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를 상대에게 눈치채이지 않고 안전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깨의 예비 동작을 없애는 기초 훈련과 숙달이 필요하다. 더불어 앞서 설명한 간합 조절을 통해 가드의 부재에서 오는 위험성을 한층 더 커버해야만 한다.

물론 료토는 이런 기초 숙달이 아주 잘 되어있는 가라테가이고, 그 동안 료토의 펀치 적중률이 높았던 것도 몸에 배어있는 이런 가라테 지르기 특유의 특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쇼군의 압박에 초조했던 료토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어진 채 뒤로 뺐다가 지르는 이른바 '텔레폰펀치'를 구사하고 말았다. 과거 동양무술이 복싱의 제물이 됐던 가장 전형적인 패턴 말이다.


무리한 욕심에 발까지 따라들어가는 바로지르기를 구사한 료토, 덕분에 카운터훅의 위력은 더욱 커졌다.
차라리 제자리에서 역지르기를 구사했더라면 거리 상 카운터까지는 허용하지 않았을텐데...


승부에 있어서 기술의 우열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때로는 가위바위보처럼 서로 물고 물리기도 하는 것이 기술과 스타일 간의 관계다. 특히나 요즘처럼 기술이나 경기 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고, 상대에 대한 연구 분석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에 기술적 대비란 누구에게나 가능할 수 있다.

이번 경기를 통해 료토는 그 동안 자신을 정상에 올려준 가라테 스타일이 가지는 약점을 스스로 보여주며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이 결과는 쇼군이 료토에 대해 철저한 대책을 세웠고, 그 약점을 드러내고 파고들만한 기술을 보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 료토의 작전 또한 완벽했고 그것을 수행해낼만한 기술 또한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가 전통가라테 스타일이 현대 MMA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냈음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지난 번 경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더욱 자신을 갖고 충분한 훈련을 통해 준비된 작전과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던 쇼군과, 반면 의심을 산 데 대한 부담으로 자기 스타일을 스스로 망가뜨려버린 료토의 마음가짐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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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