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개그맨 이승윤이 로드FC 대회에서 격투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케이지에서 5분 3라운드, 다른 아홉 경기를 뛴 프로선수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종합격투기 경기를 가진 이승윤은 2라운드 중반을 지나 닥터스톱으로 경기가 중단될 때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펀치를 뻗는 모습을 보였다. 

2개월 전 로드FC 참전 발표 직후 이승윤의 훈련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잽조차도 제대로 뻗을 줄 모르는, 그야말로 '초짜 중의 초짜' 그 자체였다. 특히 보디빌딩에 익숙해져 있던 그의 몸은 격투기에 필요한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통합적인 힘쓰기와는 상당히 멀어져 있었고, 그 감각을 바꾸고 새로운 몸쓰기를 익히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2개월 동안 자세만 만들다 올라오겠구나 싶을 정도로.

이후 몇 차례 공개된 영상을 통해 확인한 그의 모습에서도 그런 문제점은 여전해 보였다. 저래서야 거리나 타이밍을 읽고 자기 찬스를 노리는 전술적 움직임은 아예 기대도 못하겠다 싶었고, 그저 크게 던지는 훅과 태클에 운좋게 얻어걸리기만 바라는 작전 외에는 없을 듯 했다.


실제로 경기에서 보여준 이승윤의 모습도 그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러나 기대 이상이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는데, 우선은 경기 초반 타격 러시, 그리고 테이크다운을 노릴 때 생각보다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격투기 초보가, 그것도 데뷔전을 그렇게 큰 무대에서 갖는데 먼저 선공을 시도하고 압박해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펀치이고 스텝이 따라주지 못해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막무가내로 던지는 붕붕펀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그로 인해 체력적인 소모가 컸을 것이고,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 선수도 그리 반격이 거세지 않았고, 오히려 동체급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승윤의 압박하는 힘을 피부로 느낀 탓인지 아웃파이팅으로 경기를 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승윤에게도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안 그랬다면 다음 날 UFC121에서 브록 레스너가 보여줬던 호랑나비 춤이 이승윤에게서 먼저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 (경량급인 만큼 브록처럼 급격한 체력 저하는 오지 않았겠지만)

게다가 이승윤이 처음 해보는 감량에 실패하면서 전날 사우나에서 쓰러질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점 등을 생각하면, 이승윤이 2라운드까지 무릎이 굳지 않고 (발은 무거워서 거의 제 자리에 서 있긴 했지만, 무릎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공격을 시도할 정도로 움직였다는 것은 오히려 체력도 예상 이상이었다 하겠다.


또 첫 공격이 실패한 이후에도 주눅들지 않고 (비록 처음과 같은 연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단발성 공격이나마 타격을 던지며 전진하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자기가 타이밍을 잡는 정도의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받아치기에 가까운 형태가 나왔는데, 이 때 주먹을 던지면서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는 등, 초보자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상대의 타격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없었다.

앞에서도 잠깐 브록 레스너를 언급했는데, UFC121에서 케인 벨라스케즈와 싸웠던 브록은 UFC 헤비급 챔피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손을 뻗을 때 얼굴을 돌리고 눈을 감는 모습을 보였다. 브록처럼 괴물 같은 파이터도 뜻밖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타격, 특히 얼굴을 맞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다. (물론 UFC 헤비급 파이터의 안면 펀치는 그야말로 한 방이 무서운 무기이긴 하다.)

하지만 이승윤은 눈을 부릅 뜨고 전진하며 주먹을 던졌다. 더욱 대견한 것은 주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얼굴을 비운 채로 무작정 돌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펀치를 뻗을 때 상체를 낮춤으로써 상타(相打)를 피하면서 체중을 앞에 실었고, 일단 뻗고 난 후에는 바로 양손을 들어 얼굴을 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방어 동작은 기초 단계에서 분명히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되면서 배우는 부분이다. 하지만 팔을 드는 동작이 부자연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초보자가 쉽게 몸에 습관을 들이기 어렵고, 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쌓이는대로 공격 기술에 더 치중하게 되면서 소홀하기 쉬운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동작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은 이승윤이 얼마나 격투기 훈련에 진지하게 임했는지, 그리고 그를 가르친 정문홍 대표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만하다.


물론 이 경기만을 보고 격투가 이승윤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스파링 경험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그야말로 자신의 감각과 배운 것을 온전히 가지고 싸운 데뷔전의 모습이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그대로 발전해 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첫 경기를 통해 이승윤은 실전이 주는 불확실성과 수많은 변수가 주는 무서움, 주먹과 발, 무릎이 얼굴과 복부와 허벅지에 꽂힐 때의 고통, 입 안이 터지고 코피가 흘러내리는 그 비릿함을 생생히 느꼈을 것이고 결국 패배했다.

이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게 된다. 최악의 경우 이승윤은 다시 링에 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최근 인터뷰에서 "또 경기를 할 지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한 것을 봤는데, 이는 그가 그런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다시 링에 선다 해도 이전 경기에 비해 소극적인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윤의 다음 경기를 보고 싶고 기대되는 것은 전술했다시피 그가 격투기에 보여준 진지함을 눈 앞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피흘린 끝에 패배한 경기 후에도 개그맨으로서 사람들을 웃겼던 프로 의식 또한 그가 움츠러들기보다는 더 나은 격투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믿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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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