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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가운데 오늘은 경기가 하나만 열리게 되었다. 홀가분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뭔가 허탈하다는 생각도 감출수가 없었다. 한 경기면 복기 하기도 좋고 감상평을 쓰기도 좋지만 좀 일이 많아지더라도 택견배틀 판이 컸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오늘은 대전 전수관과 중구 천하장안의 경기가 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미안하지만 중구 팀에 승산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대전 전수관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고른 능력치가 배분되어있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반면 중구팀은 썩 주목할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았고 더불어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한 소병수 선수 역시 3년만의 참전이고 노장이라서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선수단이 입장하고 회장님의 팀별 소개가 있었다. 팀별 소개를 들어도 회장님도 중구팀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듯한 발언으로 관객들은 웃음을 자아냈지만 나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택견배틀의 펠레라고 불리우는 회장님의 발언은 그 분이 이긴다고 하는 팀은 대부분 진 역사가 있으니까......아나걸의 저주는 올해 들어서 꽤 희석된 것 같은데 회장님의 저주는 날이 갈수록 세지는 것 같아서 회장님의 멘트를 듣다보니 ‘이거 오늘 대전이 지는거 아냐?’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설마...하고 생각하던 차에 경기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것은 한 20분쯤 후에 알게 되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한 조상님의 지혜란......-_-

청팀인 중구의 첫 선수로 박용덕 선수가 나왔다. 이전에 중앙전수관 저녁반에 놀러갔을 때 얼굴만 본 선수여서 데이터를 모르겠는데 헬스 트레이너라는 회장님의 설명이 있었다. 김종률 선수는 경기장을 살살 돌면서 박용덕 선수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헬스 트레이너라는 명함 덕인지 힘이 좋아보이는 박용덕 선수는 태질로 끌고 가려는 듯 김종률 선수를 잡아채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여리여리해 보이는 김종률 선수는 예상과는 달리 앙탈(???)을 거칠게 부리며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결정적인 외발쌍걸이에 걸리고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김종률 선수의 모습을 보니 두 사람의 경기가 쉬이 끝나지는 않을 듯 했다. 활개를 주었다가 그 궤도로 바로 올라가는 발따귀가 몇 차례 나왔는데 그 모습도 좀 독특했다. 그러나 김종률 선수의 아랫발질을 잡아채서 넘기는 것으로 근 4분이 지난 찰나에 승부가 났다.

힘이 좋은 석사 함지웅 선수가 다음 상대로 나왔다. 박용덕 선수의 활갯짓에 함지웅 선수도 잘 걷어내면서 둘의 공방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함지웅 선수가 날카로운 후려차기를 올렸다. 풀컨택 가라데처럼 돌아가는 발길질이 특이했다. 대전 전수관이나 중구팀이나 동아리쪽이 아닌 전수관에서 수련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서로 지나치게 멀어지지도, 가깝지도 않게 경기는 지루할 틈 없이 택견의 거리 안에서 이어졌다. 그러던 중 함지웅 선수의 오른발 후려차기가 박용덕 선수의 머리에 작렬했고 잠시 삼심의 의논이 교환되었다. 다른 가라데 경기라면 KO나 반판을 딸 수 있을 정도였지만 택견은 정확하게 얼굴, 안면부만을 가격해야지 후두부를 가격하게 될 경우 반칙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의가 아니라 차는 것을 박용덕 선수가 피하다가 맞은 것이기에 반칙 경고도, 승패도 주어지지 않고 다시 재경기가 시작되었다. 손으로 안면가격, 몸통가격까지 나오던 경기는 결국 박용덕 선수가 순간 중심을 잃는 것을 함지웅 선수가 바닥으로 눌러 박용덕 선수의 손이 바닥에 닿으면서 끝나게 되었다.

중구팀에서 백병현 선수가 출전했다. 첫 출전이지만 과감하게 아랫발질로 공격을 하며 공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_-; 30초쯤 흘렀을까, 백병현 선수의 아랫발을 함지웅 선수가 잡아채며 승부가 날 듯......했는데 백병현 선수가 함지웅 선수를 덥석 포옹하면서 당황했는지 함지웅 선수는 공격을 가하던 손을 번쩍 들어올려서 ‘나는 죄가 없음’ 하는 퍼포먼스를 했고 백병현 선수는 손을 놓으면 그대로 넘어갈 위기라서 죽어라고 함지웅 선수에게 사랑(???)의 포옹을 시전했다. 그런 해괴한 포즈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주심인 장태식 선생님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부심을 불러들였다. 어쨌든......경기는 재개되었다. 백병현 선수가 상단을 정확하게 올렸지만 역시 정강이로 머리를 쳤고 얼굴을 가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기는 쭉 진행되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백병현 선수는 좀 전과는 달리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런 찰나 함지웅 선수의 오른발 후려차기가 다시 작렬했고 이번에는 정확하게 그 발이 백병현 선수의 안면에 가격되었다.

다음으로 중구팀에서 40의 태정호 선수가 출전했다. 성동일씨를 닮아 추노꾼이라는 별명이 있던데...실제로 보니 닮으셨다-_-; 중앙 전수관에서 운동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힘도 좋고 체력도 좋은 분이었는데 그런 수련을 바탕으로 어린 함지웅 선수에게 아랫발로 거칠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역시 함지웅 선수의 특기인 오른발 후려차기에 승부가 나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뒤이어 등장한 김태풍 선수도 오른발 후려차기를 올린 것을 함지웅 선수가 외발쌍걸이로 4초 정도만에 물리치면서 대전의 승리는 거의 굳어졌다. 아니,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_-;

중구의 마지막 선수로 소병수 선수가 등장했다. 소병수 선수는 허이야! 하는 기합을 넣고 특유의 금강역사 같은 방어자세를 잡으며 함지웅 선수를 슬슬 몰기 시작했다. 서로 거리 개념이 많이 틀린 전통 택견회쪽이라서 오랜만의 출전의 첫 경기에 거리 감을 슬슬 잡는다...싶었던 찰나에 함지웅 선수의 장대걸이가 소병수 선수의 으뜸 소중한 부위-_-;; 를 가격해버렸다. 어머나......-ㅅ- 본인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장내는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이구 두야-_-; 장내를 달아오르게 하고 싶었던 것인지 갑자기 소병수 선수가 펄쩍 솟구치며 돌개차기를 시전했다. 어림없는 거리였지만 덩치가 큼에도 불구하고 시전된 크고 화려한 비각술에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방어가 좋아 함지웅 선수의 후려차기를 번번히 무산시키던 소병수 선수는 결국 함지웅 선수의 다리를 잡아채 빙글빙글 돌리더니 바닥에 눕혀버리며 첫 승을 가져갔다.

여유가 있는 대전 전수관에서는 오태호 선수가 출전했다. 기합을 강하게 넣으며 소병수 선수를 걷어차는 오태호 선수를 맞아 소병수 선수는 전혀 꿀리지 않게 방어를 했다. 그러더니 기세 좋게 공격하며 방어가 허술해진 오태호 선수의 오른뺨에 아주 정확한 발따귀를 집어 넣으며 2승!!+_+

하지만 다음 선수는 대전 전수관의 에이스인 장찬용 선수. 안정적인 경기 하면 손꼽히는 장찬용 선수의 등장에 승부는 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병수 선수의 체력 문제도 있을테고 장찬용 선수의 실력도 생각할 때 승리는 장찬용 선수가 거의 확실해보였다. 장찬용 선수는 여유있게 소병수 선수를 구석으로 몰았고 몇차례 윗발질을 올렸다. 그러나 너무 자주 올려서 그런 것일까. 슥 올린 윗발을 소병수 선수의 눈이 번쩍 하는가 싶더니 번개같이 잡아채며 장찬용 선수를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장내는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럴수가!!! 깃발을 보니 이제 대전 전수관도 마지막 선수 하나만 남았다!!! 으악!!! 장찬용 선수의 엄청나게 허탈한 웃음과 대전 전수관 감독님의 헛웃음이 겹쳐보였다. 원체 사람들은 강한 팀보다 약한 팀을 응원하는 속성이 있어서인지 대전 선수들이 이길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세미슐트와 싸우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객들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이제 정말 양 팀 다 마지막 선수. 여기까지 올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회장님은 은근히 알고 있었을지도...-_-;; 대전의 마지막 선수로 윤창균 선수가 나왔다. 장대걸이가 아주 강력한 선수인데 마지막 선수이기도 하고 소병수 선수의 스타일 상 그렇게 남발하지는 못할 듯 해서 어떤 경기가 될지 궁금했다. 두 선수는 시작하자마자 잠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정지동작을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 선수답지 않게 경기를 즐기는 동작들을 보이던 윤창균 선수에게 소병수 선수가 날치기로 응수했다. 빗나간 날치기의 틈을 노려 윤창균 선수가 달려들었지만 소병수 선수는 날치기는 미끼였을 뿐!! 이라는 듯 전혀 당황하지 않고 거세게 달려든 윤창균 선수의 힘을 이용해 되려 그대로 덜미를 잡고 메쳐버렸고 장내는 다시 엄청난 함성이 울려펴졌다. 주심인 장태식 선생님은 장외! 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의 함성에 묻혀 그런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고 당한 윤창균 선수 역시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행히 장외로 재경기가 시작되었고 윤창균 선수는 다시 조심스럽게 공격을 시작했다. 덜미를 잡다가 두 선수가 경고를 하나씩 받았고 양 선수는 큰 변동 없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차며 견제했다. 그러던 중 윤창균 선수가 소병수 선수를 밀어붙이다가 바지를 손으로 잡았고 주심의 각도에서 정확하게 보이게 되었다. 물럿거라 가 선언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윤창균 선수에게 다시 경고가 주어졌다. 이거 위험한데...-ㅁ- 소병수 선수는 시간을 끌 수 있기도 했지만 오히려 기회를 보며 더 공격을 하며 적극적으로 윤창균 선수를 밀어붙였다. 몇 번 뒤엉키다가 경기장 안으로 굴러서 다시 입장하기도 하는 등 피곤해 보였지만 본인도 경고승으로 갈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소병수 선수의 후려차기를 윤창균 선수가 잡아채며 외발쌍걸이를 시전했지만 중심이 좋은 소병수 선수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무산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러 30초 남은 상황. 윤창균 선수는 마지막이기에 더욱 거세게 공격했지만 소병수 선수의 방어는 요지부동 요동성이었고 10초가 남은 상황. 관중들이 카운트를 시작했고 윤창균 선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소병수 선수를 잡았다. 둘의 힘이 잠시 교차되는가 싶더니 경기가 끝나는 순간 윤창균 선수는 서로 맞잡은 상태에서 딴죽을 걸었고 소병수 선수는 그 딴죽을 피하며 중심이 흐트러진 윤창균 선수를 돌려 바닥에 메쳐버리며 경기 끝!!!+ㅁ+

정말 엄청나게 큰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런 함성이 나오지 않았을까? 머릿속에 ‘회장님의 저주’ 라는 생각이 맴돌았고 중구팀은 소병수 선수를 헹가레치며 기쁨을 누렸으며 관객들은 멋진 역전승에 크게 박수로 화답했다.

절대 열세에서 승리한 중구팀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났지만 역시나 가장 대중적인 예인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뭐......소병수 선수는 다윗치고는 기골이 좋긴 하지만-_-;; 생각해보니까 골리앗을 잡는 것은 가디언인데 소병수 선수의 방어(가드)가 좋은 것도 한몫 한건가???(스타 크래프트를 모르는 분들은 죄송합니다.) 하여튼 바로 이런 것이 택견판의 묘미인 듯 하다. 절대 열세라도 승부라는 것은 끝까지 장담할 수 없는 것. 그러므로 삶에서도 절대 열세라고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새로운 길은 열릴 수 있으며 그 길에는 이전의 절망과는 차원이 다른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모습을 보여준 중구 천하장안팀. 아, 이래서 나는 택견을 좋아할 수밖에 없나보다.

by 곰=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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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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