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콩에서 열린 MMA 대회 LFC(레전드 파이팅 챔피언십)4에서 남의철이 대회 간판스타인 아드리안 팡에게 1-2 판정패했습니다.
이 대결은 원래 라이트급 타이틀매치로 치러질 예정이었죠. 그러나 주최 측이 계체량을 예정보다 5시간 앞당겨 실시했고, 미처 체중을 맞추지 못한 남의철은 3시간 후의 재계체에서도 한계체중을 200g 초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둘의 경기는 타이틀매치가 아닌 수퍼파이트로 변경됐고, 남의철은 파이트머니의 20%를 주최 측에게 몰수당했죠. 남의철 입장에서는 급작스레 계체 시간을 바꾼 주최 측의 행태가 불만일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경기 내용에 따른 판정 결과에도 남의철 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인데요. 비록 1라운드에 눈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긴 했으나 2, 3라운드에는 팽팽한 타격전 와중에 테이크다운을 몇 차례 성공시키며 유리한 흐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의 악연은 이미 지난 LFC1 대회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아드리안 팡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망가진 얼굴로 경기를 마쳤으나 심판단은 무승부 판정을 내린 바 있거든요. 이런 전력이 있다 보니 이번에도 중화권 출신으로 단체를 대표할 재목인 아드리안 팡에게 심판의 마음이 기운 것 아니냐는 의심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격투기 뿐 아니라 어느 스포츠에서든 적지에서 싸워야 하는 '어웨이' 경기에서는 유무형의 불리함을 안고 싸워야만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무조건 한판을 뺏어야 한다는 이상론까지 펼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전 대회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면 그런 부분까지 감안한 준비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1라운드에 출혈이라는 불리한 판정 요소를 받은 상태였다면, 경기 후반에선 뺏긴 1라운드를 되찾을 수 있을 만한 보다 확실한 공격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물론 남의철 선수는 그것을 위해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고, 그런 싸움 끝에 뺏은 몇 번의 테이크다운은 선수나 코너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공격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규정이 세분화된 대회를 제외하면 테이크다운이나 포지셔닝이 판정에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테이크다운에서 유리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승리를 뺏겼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냉정하게 말해서 그저 자기 위안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남의철 선수의 계체 실패입니다. 제가 심판장을 맡았던 지난 로드FC 1회 대회 때에도 남의철 선수는 계체 통과를 무척이나 힘들어했습니다. 남의철 선수는 계체를 불과 3~4시간 앞두고서부터 급격히 체내의 수분을 빼내는 방식으로 약 6kg 정도의 감량을 시도했는데요. (물론 이를 위한 준비 과정은 상당히 길고, 계획적인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야 합니다.)
이런 감량 방식은 몸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역할을 위해 수분을 필요로 하는 콩팥에 수분 공급이 부족한 시간을 최단화함으로써 콩팥의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장기적인 건강 관리 차원에서도 좋을 뿐 아니라, 당장 감량 중인 선수로서는 갈증이나 수분 부족을 겪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빠른 수분 배출 만큼 다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줄 때 몸이 흡수하는 정도, 즉 흔히 '리바운드'라고 하는 (정확히는 '리게이닝'이 맞는 표현이라고 함) 체중 회복 속도나 양도 빠르고 크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잘만 하면 감량으로 인한 체력 및 근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 특히 같은 체급이라도 서양 선수들에 비해 힘에서 많이 밀리는 동양권 선수들이라면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방법이죠. 로드FC 당시에도 남의철 선수 뿐 아니라 다른 몇몇 선수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감량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방식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예상대로만 감량이 가능하다면 정말 이상적인 방식이겠지만, 사람의 몸이 기계가 아니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예상 수치에서 어긋나게 되면 부족한 시간과 남은 체중은 피하려고 했던 스트레스의 몇 배로 다가오게 되고, 그만큼 더 무리한 수분 배출을 해야 하므로 결국 신체적으로도 수용할 수 있는 변화 범위에서 어긋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물론 충분히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계획적인 스케줄과 관리가 병행된다면 오차 범위를 상당히 줄일 수 있겠지만, 현재 대부분의 국내 선수들은 경험치도 적을 뿐 아니라 경기 스케줄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국내 선수들에게 이런 방식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특히 남의철 선수는 경기 전에 상당히 예민해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행히 그것을 링 위에서 폭발력으로 삼는 남다른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더더욱 예상치 못한 컨디션 난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남의철 선수가 차라리 조금 더 여유있게 미리 감량을 해두고 계체를 빨리 통과한 후 회복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런 불안 요소 때문에 결국 이 방식은 주어진 시간을 빠듯하게 사용해야 하는, 즉 재계체를 위해 주어지는 시간까지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실제로 남의철 선수는 로드FC 때도 첫 계체에서는 통과를 못했고 재계체를 통해 체중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LFC처럼 느닷없이 예정이 바뀐다거나 하면 체중을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건 주최 측의 잘못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선수 본인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 격투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해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농담처럼 오가곤 합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도 해외이므로, 일본에서 당하는 이상한 일도 많죠. ^^;) 그만큼 어웨이 경기, 특히나 문화/관습/사고방식 등이 다른 해외 지역의 경기에서 '우리에게는 상식인 일이 거기서는 통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이번에는 전화위복이랄까, 계체 실패로 타이틀매치가 아닌 수퍼파이트를 치르게 된 것이 오히려 패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언제 또 타이틀매치 기회가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사 불여 튼튼'이라, 부디 해외 대회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언제나 확실한 준비 과정을 통해 제대로 실력을 보여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 LFC 홈페이지
www.legendf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