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는 김동현에 이어 양동이가 UFC 진출을 이뤘고, UFC의 경량급 무대였던 WEC에서는 '코리안좀비' 정찬성이 단 한 번의 경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UFC의 WEC 통합 선언에 따라 정찬성 역시 UFC 파이터 타이틀을 손에 넣었으며, 곧 Ulimate Fight for Troops라는 이벤트를 통해 UFC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고요. 북미 MMA 무대 중에서도 최고의 무대에서 한국 파이터들의 활약을 볼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양동이는 데뷔전에서 패하면서 아직 경험이나 스타일 면에서 불안 요소가 많다는 평을 얻고 있으며, 정찬성 또한 현실적으로는 2패를 안고 출발선을 떠난 상태로 다음 경기에서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 입장에 서있죠.
다행히 김동현은 부상으로 인해 활동이 주춤하긴 했지만 9개월만의 복귀전에서 아미르 사돌라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성공적으로 귀환했고, 한국 시각으로 오는 1월 2일 아침 UFC125를 통해 5번 째 승리에 도전하고자 현재 미국에서 맹훈련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김동현에 대해서 지루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UFC 데뷔 때부터 '스턴건'이라는 별명처럼 한 방에 상대를 KO 시키는 모습을 기대했던 심리가 점점 초조함이나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되는데요. 다행히 'UFC에서의 생존과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우선한다'는 김동현의 태도에 대해 대다수의 팬들은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합니다. 왜 김동현은 일본 무대에서처럼 UFC에서 화끈한 KO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일까요?
전술전략적 가능성
김동현의 소속팀인 팀MAD는 안전하고 높은 승률을 보장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현실파입니다. 제가 2008년 김동현의 UFC 두 번 째 경기에서 코너맨으로 참가했던 당시의 후기에도 썼습니다만, 안전한 경기 운영을 위해 테이크다운에 노출될 위험 때문에 로킥도 거의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팀MAD의 스타일이죠. 그러다 보니 복싱과 레슬링 테크닉을 주력으로 하는 이른바 '복슬러'식의 전략 전술을 주로 구사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상대였던 아미르 사돌라가 스타일이나 체격, 맷집 등을 고려해봤을 때 여지껏 상대했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타격 승부를 걸어볼만한 타입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타격 승부를 걸어보진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김동현은 테이크다운 압박 전략을 선택했죠. 아마도 부상으로 오래 쉰 후의 복귀전이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싸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점점 위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 김동현이 향후 타격 승부를 걸어볼만한 상대가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번에 싸울 네이트 디아즈도 타격 스킬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만약 제가 김동현의 코치라면 예의 왼손 스트레이트를 활용한 타격전을 주문하겠지만, 좀비라는 별명처럼 워낙 맷집이 좋고 밀어붙이는 타입이라 위험 부담을 안고 싸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팀MAD의 성향대로라면 이번에도 레슬링 싸움을 주전략으로 삼을 확률이 높겠죠. 김동현 스스로도 타격보다는 레슬링 싸움을 선호한다고 했고요.
결국 현재 팀MAD와 김동현의 스타일대로라면 상대가 레슬링과 그라운드가 극강이면서 타격에서는 구멍이 많은 타입이라야 타격 승부를 노려볼 만한데, 현재 UFC 웰터급에서 그런 선수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따라서 앞으로도 김동현의 전략이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서브미션승 노려볼 확률은??
지난 사돌라전은 김동현이 왜 개미지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하게 해준 경기였습니다. 그만큼 김동현의 그래플링 압박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판을 뺏는데는 실패했죠. 김동현의 그래플링 테크닉이나 신체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압도할 정도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특히나 김동현은 클린치 상태에서의 중심 싸움에 시간을 많이 쓰고, 테이크다운 이후에도 서브미션을 적극적으로 노리기보다는 상위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파운딩으로 상대를 서서히 무너트리는 데 주력하는 편입니다. 매우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긴 하지만, 서브미션으로 한판승을 따내기는 어려운 전략이라고 봐야겠죠.
더구나 상체 근력에 의존해야 하는 복슬러 전략은 후반에 체력이 달릴 수 있는 위험성도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돌라전에서도 후반 태클은 실패했고요. 특히 이번 상대인 네이트 디아즈는 그라운드에서의 서브미션 승률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따라서 후반에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테이크다운을 노리다가 오히려 서브미션 역습에 당할 위험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양상은 레슬링 실력과 상체 근력이 좋은 상위 랭커들과의 싸움이 될수록 더 확연해질텐데요. 특히 김동현의 복슬러 스타일이 UFC 선수들로서는 가장 익숙한 타입이란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분명히 변화를 꾀해야할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당장 초반 경기들만 해도 유도의 허리기술이나 다리기술을 활용한 테이크다운으로 꽤 재미를 봤지만, 최근 경기들로 올수록 그런 기술을 사용하기도 어려워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타격에 의한 승리,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
작년 여름 일본 최고의 종합격투 타격전문가라고 평가받는 요시타카 히로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요시타카는 김동현의 타격, 특히 왼손 스트레이트에 대해서 흠잡을 데 없는 기술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최근 익스트림커투어 등에서도 김동현은 타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재능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요시타카 히로무 역시 UFC 선수들의 신체적 스펙이 월등하기 때문에 일본에서처럼 쉽게 KO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렇다고 타격을 쓰는 것에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다면서, 정확한 자세를 유지하고 완벽한 카운터 타이밍을 잡는 훈련을 통해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했는데요.
팀MAD 양성훈 관장의 미트 트레이닝은 다른 팀의 트레이너들도 칭찬할 정도로 정평이 나있으니, 충분히 그것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될 수 있는대로 킥을 좀 더 활용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펀치와 레슬링만으로 싸우는 것은 안전하긴 하지만 그만큼 정직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상당한 스태미너를 소진하게 될 뿐 아니라 복싱에 익숙한 UFC 선수들을 상대로 빈틈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킥을 이용해 공격의 궤도를 입체화함으로써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타격전을 유도해 카운터 상황을 끌어내야 합니다.
특히 펀치, 레슬링, 그라운드 등의 영역에서 기술적 레벨이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당분간은 킥을 잘 쓰는 선수들이 보다 유리한 경기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필 데이비스, 티아고 알베스 등은 이미 미들킥이나 로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승리를 얻어내고 있기도 하고요. 심지어 지난 WEC53에서는 앤서니 페티스가 만화에나 나오는 기술이었던 삼각차기로 벤 핸더슨을 쓰러트리지 않았습니까?
앞서 팀MAD는 상대에게 잡히는 것을 경계해 킥을 잘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미들킥 같은 경우 과거 MMA에서는 킥캐치를 염려해 잘 쓰지 않던 대표적인 기술이지만, 위에 예로 든 필 데이비스나 티아고 알베스 등은 킥을 잡히더라도 충분히 버티거나 그라운드로 끌어들여 싸울 수 있는 레슬링 실력을 믿고 자신있게 미들킥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김동현 역시 충분히 과감한 킥 사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레슬링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 그러는 편이 테이크다운을 노리기도 쉽습니다. 웰터급 최강자인 조르주 생 피에르 또한 가라테 기반의 킥을 베이스로 한 자신만의 독특한 타격 리듬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테이크다운 찬스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번 UFC125에서의 상대인 네이트 디아즈는 그 스타일 상 어찌 보면 김동현이 타격으로 승부를 노려서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지도 모릅니다. 가능하면 화끈한 KO승을 거둬서 김동현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도 기분 좋은 새해 선물이 됐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서 2011년에도 승승장구, 타이틀샷까지 한 번 노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