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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MMA 단체 UFC의 신입 일본 파이터 나카무라 린야(28, 일본)가 UFC 본선 두 번째 대비를 위한 무사수행을 위해 16일부터 18일 한국을 찾았다. U23 레슬링 세계 챔피언이기도 한 나카무라가 한국에서 배움을 구하는 것은 한국 전통 무예인 씨름과 택견. 

[자리를 함께한 나카무라와 배수용 협회장을 위시한 파주시 씨름협회 임원들

나카무라가 16일 찾은 곳은 파주시 씨름협회가 조성한 파주시 내 최초의 본격 씨름장인 월롱 씨름장. 우연찮게도 방문 시기가 씨름 시즌과 겹치는 탓에 애를 먹어야 했던 나카무라 측에게 손을 내민 건, 현역 시절부터 한일 스포츠 교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체대 11기이자 유도 7단의 무예인인 배수용 파주시 씨름협회 회장이라는 후문이다. 

이 날 장기전 씨름의 달인으로 대통령배 개인전 소장배 우승을 경험한 손경호 선수와 들기 씨름을 장기로 삼고있는 대통령배 무제한급 일반부 우승의 노윤성 선수 두 명을 코치 삼아 씨름을 처음 접한 나카무라는 2시간 동안 강도 높은 스파링과 지도로 본업인 MMA에서 활약할 수 있는 씨름 기술들을 타이트하게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코치인 노윤성, 손경호와 우승 샅바와 트렁크를 교환한 나카무라]

나카무라는 "레슬링과 다른 축과 힘 활용법이 너무 흥미로웠다. 다음 경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더욱 연구해 보고 싶다"며씨름과 첫 조우에 대한 감상을 대신했다. 일일 코치로 그를 지도했던 손경호, 노윤성 선수는 "힘과 밸런스가 너무 좋다. 배우는 속도도 빨라서 다음 파주시 팀으로 씨름에 대회에 출전해줬으면 한다."라며 나카무라를 칭찬했다. 

배수용 씨름협회 회장은 "일본의 MMA 기대주인 나카무라 선수가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씨름을 배우고 싶어하는데 배울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먼저 연락을 취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본이지만 스포츠 교류만큼은 끊기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향후에도 교류를 원하는 격기종목 선수나 팀이 있으면 편하게 연락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회장은 "씨름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무예이기도 하지만 이웃나라의 선수가 배움을 구하러 올 정도로 현대격투기에도 적용될 정도로 세련된 무술이다. 향후 파주시 씨름협회는 실업팀 창단과 생활체육, 동호회 활동을 적극지원하여 씨름의 발전과 저변확대에 힘을 아끼지 않겠다." 라고 씨름 발전에 이바지 할 것임을 천명했다. 

16일 만족스런 씨름 훈련을 끝낸 나카무라는 17일 KTT에서의 MMA, 수원에서 결련택견 훈련을 마치고 18일, 한국을 떠난다. 올해 2월 카자마 토시우미에 초살 KO승을 거두고 로드 투 UFC 밴텀급 우승을 거머쥐었던 나카무라 린야는 올해 상반기 내에 UFC 본선 두 번째 경기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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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Ip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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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현대 사이에 침체기를 겪었던 택견이라는 한국의 전통은 중요 무형문화재 76호로 등록되면서, 또 협회들이 각자의 노선과 사상대로 서로 경쟁구도를 그리면서 서울지역에 국한되었던 전통에서 이제는 대한민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삶 속으로 녹아든 전통이 되었다.

전통이란 오랜 세월 면면히 흘러 내려온 것이고 오랜 세월 잊혀 지지 않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이어진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는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많은 관심과 사랑 때문인데 그런 전통들은 인습과는 달라 사람 사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전통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이라는 전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한국사회를 철학이 부재한 사회, 천민자본주의라고 많은 식자층이 개탄한다. 철학이 부재한 사회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왔다. 철학이 없어 인간의 가치를 매몰시키며 자란 것이 산업혁명 시기이며 그 산업혁명의 시기가 바로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를 낳았으며 그 제국주의 시대의 직접적인 피해를 우리 조상들은 입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는 결국 전 세계를 미치게 만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오늘날 한국도 철학의 부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은 함께 뛰노는 것보다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더 열을 올리거나 남 앞에서는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악성 댓글로 배설하기도 한다. 밖에서 노는 쪽이라 해도 건전한 취미 쪽으로 발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택견이라는 우리의 전통은 많은 것을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한다.

먼저 택견이라는 기예는 격투기에서도 독특한 분류로 속한다. 타격과 유술을 공존하면서 승부는 한 판제를 도입함으로 경기는 상대의 얼굴을 정확하게 발로 한대만 차거나 넘어뜨리면 이기게 된다. 간혹 택견 경기를 보면 덩치가 큰 선수가 발길질을 하거나 잡으려다가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선수가 거는 딴죽이나 낚시걸이에 어이없게 쓰러져 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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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격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택견의 방식이 격투기 치고는 너무 밋밋하다고 한다. 그러나 격식을 갖추어 싸워 겨루는 기술이라는 의미를 가진 격투기(格鬪技)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기존의 격투기들이 과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기존의 격투기와는 전혀 다른 택견의 승부방식이 각박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넉넉함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한 경쟁사회 시대, 모 웹툰은 고등학교를 정글에 비교할 만큼 사회적 인식이 심각해져 있다. 남을 밟고 내가 올라가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고,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그런 사회. 그러나 언제나 백척간두에서 불안한 균형을 잡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편할까?

그러나 택견은 내가 힘이 남아있어도 상대의 절묘한 한수에 승복하며 물러날 줄 알며 그것은 참으로 신사적이다. 내가 어이없게 당한 것에 씩씩대며 들이닥쳐 힘으로 짓밟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긴 상대의 수법에 수긍하며 박수를 치며 물러나 줄 수 있는 것은 극한으로 치닫기 쉬운 현대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택견이 가진 넉넉함의 철학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철학이 아닐까?

택견이 이런 넉넉함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럼 택견의 앞으로의 방향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나는 그 모습을 결련택견이라고 보고 있다. 그냥 협회구분의 용도로 자주 쓰이는 어휘지만 결련택견의 본래 뜻은 다음과 같다.

[결련(結連)택견의 사전적 해석]

결련태껸: 갑동(甲洞)과 을동(乙洞)이 각각 편을 먹고 승부를 결하는 태껸

(문세영, 조선어 사전, 1938)

결련태 : 여러 사람이 편을 짜 가지고 하는 택견(동아국어사전, 1971)

보다시피 결련택견은 단체전 택견이라는 의미이다. 신한승 선생님은 결연택견이라고 해서 결연하게 하는 택견, 즉 싸움수까지 포함한 택견이라고 하셨지만 사전만 보아도 그것은 오류이며 송덕기옹도 결련택견에 대해 사전과 동일하게 설명하셨다. 이보형 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송덕기옹이 결연택견이 막찬다는 의미, 호신술로서의 의미라고 설명하셨지만 그것은 인터뷰가 잘못 흘러간 것이라는 판단이 맞을 것이다. 이보형 위원이 자신이 얻어낼 답을 위해 인터뷰를 이끌어 나간 것은 택견을 한 계층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는 것에 대해서 송덕기옹이 깡패라고 하자 당황해서 무술인이군요- 하고 얼버무린 것만 봐도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택견의 기예를 서로 편을 짜서 겨뤄보는 판인 결련택견은 개인의 기예로서의 택견을 떠나 동료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넉넉함과는 또 다른 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

무예24기 협회의 최형국 사범은 자신의 글에서

'삶이라는 글자를 컴퓨터 자판으로 타자를 치다보면 종종 -사람- 이라고 오타가 나곤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기에 컴퓨터 자판조차 그런 것을 보여주는 신비함이 아닌가 합니다.'

라고 서술한 적이 있다. 이 말처럼, 그리고 어느 학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배제할 수 없는데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개인사회에 너무나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양극화로 인해 서로에게 스스로 계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련택견은 개인과 개인의 겨룸으로 최상으로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동료들 상호간의 조화를 이루어 윗대, 아랫대, 동네간의 팀을 이룸으로써 그들 각자 구성원이 팀에서 최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

전술했다시피 택견은 규칙으로 인해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는 경우도 있고 발질이 뛰어난 선수에 대해서 힘이 좋은 선수를 내보내기도, 힘이 좋은 선수를 빠른 발질이나 기묘한 발질로 제압하기 위해서 그런 선수를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 한 개인만의 잘난 것이 아니라 택견패의 각 구성원마다 특기가 다르고 그렇기에 구성원은 그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어느 선수는 귀하고 어느 선수는 별 볼일 없는 그런 구분이 아니라 모두가 패를 이루는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그것을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미친 듯이 사교육의 열풍에 휘말리는 모습과 결련택견 패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사상은 알게 모르게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다. 미국의 어느 실험처럼 영화 시작 전 광고의 짧은 프레임 안에 코카콜라 선전을 끼워 넣자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인식한 관객들이 다른 콜라가 아닌 코카콜라만을 구매했다는 것처럼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면 택견을 수련함으로써 넉넉함을 키우고, 또 그런 기예로서의 택견을 익혀 흥겨운 결련택견 패로서 경기에 나가며 패의 구성원 모두를 나와 같이 소중하게 하는 그런 마음을 키워나간다면 어느새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택견꾼들은 그런 넉넉함과 구성원의 소중함을 체화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예로서의 택견, 그리고 단체전으로서의 결련택견이라는 우리의 전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풍요로움을 준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전통이 끊어지는 일 없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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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Q&A 시즌2 끝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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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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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택견 Q&A 는 저도 잘 모르겠고 다같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주제입니다.

일단 택견에 대한 풍속도나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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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결련택견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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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 유명한 대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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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연세대 어학당에 있다는 그 풍속도인듯 합니다.(확인을 못해서..-_-;) 출처는 보시다시피 [무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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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사진.

이외에 기산의 풍속도는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그 풍속도는 택견이라기보다 씨름에 더 가깝다고 알고 있고요.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풍속도, 사진에는 성인은 없고 댕기머리의 아이들이 택견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알 수가 없더군요. 오죽하면 [일본인들이 성인들이 택견하는 풍속도는 이 잡듯이 찾아내서 없애버렸다.] 라는 생각까지 들까요... 대쾌도, 외국인 선교사의 사진 등을 보아도 언제나 택견으로 추정되는 기예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나 소년들입니다. 동작이 같아서, 그리고 택견의 기본 자세인 인승자세와 같고 씨름과 함께 세시풍속으로 행해졌다는 택견이 언제나 거의 같이 나와서 택견이라고 추정되는데 왜 항상 아이들만 있을까요.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 택견이 아니라 택견과 비슷한 까기 등의 애들 놀이이다.


일단 이 아이들이 하던 것은 택견이라기보다 까기 등 발로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 정도였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아이들의 자세는 풍속도나 사진이나 모두 비슷한데 윗발질의 모습은 전혀 나오질 않고 기본 자세만 보이고 있죠. 씨름의 경우는 서로 샅바를 잡은 자세들 외에도 들어 올리는 자세 같은 것이 나오는데 비해 택견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은 자세가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2. 성인들의 택견은 매우 격해서 그림으로 그것을 묘사하기 어려웠다.


성인들의 택견이 아이들과 달라서 매우 격렬했기 때문에 폭력성이 짙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풍속도란 미풍양속의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 격렬하게 두들겨 까는 것이 풍속도로 그리긴 좀 그렇지 않겠냐.


라는 의견이었습니다만 여성들 목욕하는 그림이나 석전(石戰)도 풍속도로 버젓이 있는 판에 그거 좀 격렬한 놀이라고 못 그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싶네요.


3. 성인들의 택견판은 밤에 했기 때문에 그림을 못 그렸다.


명절날 크게 하던 택견판은 멍석 깔아놓고 화톳불을 밝히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밤에는 그걸 그리기가 어려웠다.....라는 생각도 있지만 밤에 생각했다가 낮에 그릴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요-_-


4. 일본인들이 성인들이 택견 하는 그림이 멋있어서 다 훔쳐갔다.


제일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입니다. 남아있는 그림들은 뭘까요.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답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답은 커녕 실마리도 못 잡는 것 같아요. 분명히 명절날에는 성인들도 크게 택견판을 벌였다고 하는데 말이죠. 도대체 왜 성인들의 택견 모습은 그림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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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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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할아버지께서 전수한 택견에는 무기술이 없었습니다. 많은 택견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도 택견의 무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꽤 많은 무술 문파들이 여러 병장기 기술을 하는데 비해서 택견에는 딱히 무기술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가 단봉을 돌리시거나 그랬다는데 그것도 그냥 개인의 기법일 뿐이지 어떤 병장기를 쓰는 기술이 전수되어 온 것은 없다고 보입니다.




요즘 들어 선보이는 충주 쪽의 육모술이나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은 최근에 도입된 것입니다.


현대적인 발전의 일환으로서의 무기술의 도입은 역사의 왜곡만 없다면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육모술의 영상을 보시죠.


[택견 기능보유자 정경화 선생의 육모술 시범]

다음은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 시범 영상입니다.


[결련택견협회의 호패술 시범]

이 호패술의 경우는 모 무술사이트에 한국의 비전 무예라고 실렸다가 여러 논쟁이 있었습니다. 소림무공과 금강영관을 하는 최종렬 법사는 말하길 이 무기는 한국의 무기가 아니라 소림무공을 하는 허주 스님 유파의 독문 병기인 용비봉무곤이며 한국에서 이 무기의 술기 기법들은 모두 계보를 올라가면 허주 스님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최종렬 법사는 이에 대해서 자신의 까페에 허주 스님과의 문답을 가감 없이 올려놓았으며 최종렬 법사의 반박에 대해서 그 기사는 딱히 계보에 대한 반박은 하지 않고 해묵은 역사논쟁은 그만하고 더 이 무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에 에너지를 쏟자는 말로 관련 기사를 마감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있지만 단태봉의 역사를 파헤치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그것은 관심있는 분들의 몫인 듯 하군요.


[한국의 비전 무기, 호패술?]

[단태봉, 호패술, 승홀곤...역사정립 필요]

[해묵은 역사 논쟁 이제 그만!!]


[최종렬 무예원]


어쨌든 이 호패술이라는 것도 최근에 도입된 것이며 원래 있던 무기술은 아닙니다. 또한 호패술에 대한 책은 발간되지 않았습니다.

무예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추가도 되고 분화도 되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가구의 권법도 처음에는 투로가 적었다가 시간이 흘러 폭발적으로 많아졌다가 다시 줄어들고 다른 수련법도 받아들여가곤 했죠.


택견만 가지고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고 또 할것이 많은데 쓸데 없이 무기술을 도입한다고, 그리고 그런 종류의 무기술에 열을 올리고 택견은 잘 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싫어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만 결련택견협회의 경우 호패술이 정규 수련과정은 아니며 관심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고...또 현대 사회가 되면서 여러 무기의 위협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이프 정도의 무기는 위협대상으로 남아 있으니 호신의 차원에서 단봉 종류의 무기술이 하나 정도 도입되어 수련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쓰고 나니 너무 짧은가요? 연말연시라고 생각해주세요...^^ 새해에 복들 많이 받으세요(__) 새해에는 모든 나쁜 것들을 힘차게 발질로 날려버리시지요. 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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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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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원형은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입니다. 그럼 택견의 원형인 송덕기 할아버지의 기술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모습을 많이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영상으로 남아있는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 모습들은 유튜브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죠. 그리고 문헌이나 여러 증언들을 통해 택견은 발질 위주의 무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택견은 전에도 적었듯이 분명히 무예였으며 또한 수박과의 연관성을 생각할 때 거의 종합격투 정도의 기술체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송덕기 할아버지는 발질 외에도 꺾는 기술도 많이 가르쳐 주셨고 경기에서는 쓸 수 없는 여러 기술들도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강하게 치고 나온 쪽이 바로 한풀이라는 단체입니다.

[한풀 홈페이지]

한풀은 한국에 대동류 합기유술을 전하신 최용술 도주님에게 9단을 받으신 김정윤 선생이 만든 단체로서 이 한풀이라는 단체에서 2000년 초반에 [태견] 이라는 책을 냈었습니다. 당시 이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배우는 택견의 모습과 전혀 달라 보이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이 기술들이 택견이 아니라 한풀의 기술이며 송덕기 할아버지가 돈을 받고 시범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무리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는 택견에 대해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분이고 오래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술을 많이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꼬장꼬장한 분이 돈 몇 푼에 한풀 기술을 택견 기술이라고 촬영에 협조한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한풀에서 주장하는 택견의 사상이야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 마음이지만 적어도 그 책에 나온 기술은 송덕기 할아버지께서 간직하던 택견 기술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택견이 마을과 마을 간의 단체전으로 즐기던 경기인 결련택견 뿐 아니라 한량들의 싸움 기술로도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술들은 여러 형태의 품밟기, 활갯짓, 태질, 꺽는 기술, 택견춤에 심지어는 혈 누르기까지 나옵니다. 특히 여러 관절기와 혈 누르기 때문에 합기유술을 한 김정윤 선생의 기술이라는 말도 나왔었지요.

그러나 이 책을 촬영하기 한참 전인 69년도 정도에 고용우 선생이라는 분이 택견을 배웠는데 이미 이때도 혈 누르기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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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우 선생에게 겨드랑이 급소를 누르는 법을 지도하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위대택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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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태권도장에서 여러가지 꺾는 기술을 지도하시는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인터넷 검색

그러니 적어도 혈을 누르는 기술이나 관절을 꺾는 기술이 택견에 없는 것은 아니었겠죠. 여하튼 저는 2004년 10월에 한풀에서 수련을 한 사범님을 우연히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풀에서 한풀과 더불어 송덕기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택견 기술도 배우신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도기현 회장님도 만나셨었다는데 도기현 회장님도 한풀의 태견 책에 나온 기술을 다 알고 있으며 다만 이름을 모르고 기술만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도기현 회장님 및 결련택견협회의 초기 선생님들도 역시 송덕기 할아버지의 원형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또 송덕기옹의 원형기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이 최근에 떠오른 고용우 선생 이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1969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무렵부터 같은 동네에 살던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택견을 꾸준히 배워왔고 한풀에서 발간한 태견 책에 이준서씨와 함께 모델도 하셨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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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 할아버지와 고용우 선생.
출처는 [위대택견 홈페이지]


이 분은 1985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현재는 LA에 위대택견 전수관을 운영하고 계시며 제자인 분이 남금재 택견전수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분의 경우는 택견의 마지막이라는 택견춤까지 다 배우셨다고 하더군요.(택견춤은 현재 협회들에서 말하는 본때를 보이는 것과는 틀린, 말 그대로 어떤 형식의 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송덕기 할아버지가 시범을 보이셨으니 이런 것도 있긴 있었다고 보아야겠지요.)


[남금재 위대 택견 전수 클럽]


정황상으로 역시 송덕기옹 가까이에서 오래 택견을 배우신 분 같으며 적어도 결련택견협회나 한풀만큼 택견의 원형기술을 잘 간직하고 있으신 듯 하군요.

결련택견협회는 과거 서울 택견보존회-> 서울 택견계승회(택견계승회)-> 결련택견계승회-> 결련택견협회로 명칭의 변경을 해 왔습니다. 결련택견협회는 회장인 도기현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준서, 이호범, 권수일, 최유근 등이 속해있었으며 도기현 회장님은 대학교 2학년부터 유학가기 전까지 약 4년여 동안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같이 다니며 택견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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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계승회 회원들과 송덕기 할아버지. 출처는 인터넷 검색.


처음에는 홀로 배웠으나 이후 사람들이 많아졌고 위에 거론된 분들은 도기현 선생님이 유학을 가시고 나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배웠습니다. 이준서씨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국가 전수생이었으며 송덕기 할아버지와 같은 동네였고 이호범 선생님 역시 후에 국가 전수생이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쭉 배웠습니다. 겨울철에도 쉬지 않고 박민 태권도장을 빌려 꾸준히 배울 정도로 열성적으로 오랜 기간 배웠기 때문에 송덕기 할아버지는 기술을 많이 풀어놓으셨으며 현재 문화재 택견 체계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꺾는 기술도 지도하셨습니다.




이 정도가 그래도 비교적 송덕기 할아버지의 택견의 기술을 원형대로 많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언급한 쪽은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배운 사람들 중 [가까운 곳에서] [3년 이상 거의 매일 같이] 배운 분들만 언급했습니다.


기간을 3년으로 잡은 것은 무술계에서 통속적으로 소성(小成)하는데 3년이 걸린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였고 가까운 곳과 거의 매일 이라는 제한을 둔 것은 송덕기 할아버지가 기술을 많이 가지고 계셨지만 딱히 체계적인 수련표를 만들어 지도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또 기간이 지나서야 한수 두수씩 기술을 가르치셨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거의 매일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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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g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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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는 인터넷 검색.


택견 협회는 크게 결련택견협회, 한국전통택견협회, 택견원형보존회, 대한택견협회 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통택견협회와 택견 원형보존회는 같은 충주쪽이고 대한택견협회는 지금 대한택견연맹으로 부르지만 편의를 위해 그냥 협회라고 말하겠습니다.

택견협회가 분열한 것은 송덕기 할아버지에게 배운 제자들의 택견에 대한 가르침과 해석의 차이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택견의 승부방법은 얼굴을 한대 차거나 상대를 넘어뜨리면 이기는 방식으로 세 협회가 동일하지만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품밟기, 활개짓, 발질의 세기 문제입니다.

먼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충주협회의 택견은 택견의 정체성을 무술로서 인식하며 신한승 선생님의 몸짓과 송덕기 할아버지가 보여주던 옛법 시범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리고 신한승 선생님이 중요시 여기시던 활개짓을 매우 강조해서 시합에서도 활개를 크게 크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택견 경기인데 팔을 크게 위로 빙빙 계속 휘두른다면 충주쪽의 택견이죠. 신한승 선생님은 택견을 무술로 인식하셨기 때문에 충주쪽은 그런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택견경기를 하면 원형이 훼손된다고 기능보유자인 정경화씨는 말합니다. 그리고 경기장의 크기도 1회 택견대회의 크기와 같은 큰 경기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품밟기는 정품밟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발질은 다리, 몸통, 얼굴 할 것없이 강하게 차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충주쪽의 택견이 무술에 지향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겠죠.



대한택견협회는 택견을 경기위주로 바라보고 있으며 송덕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중 는질러차기라는 것과 품밟기의 대접에 매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상대를 욱하게 차서는 안된다."
"는질러차는 것도 덮어놓고 차는 것이 아니라 서로 품을 밟는 약속에서 차는 거다."(1964년 5월 16일자 한국일보 인터뷰)

라는 식의 증언은 분명히 있어왔고 이에 따라 이용복 회장님은 택견의 움직임을 '굼실' '능청' 우쭐' 으쓱' 으로 상세히 분화시켜서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품밟기도 상대가 공격하기 용이하도록 항상 발을 하나 앞으로 내주면서 품을 밟아야 한다고 경기규칙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또 기본적으로 수련하는 품밟기는 정품자(品)가 아니라 역으로 밟습니다.

(설명 참조 영상)

발질은 얼굴, 몸통, 다리 모두를 상대를 다치지 않게 밀어차야 합니다. ABO채널의 동양 삼국의 문화 무술편 인터뷰에서 이용복회장님은 서로 택견을 하다가 다치면 노동력의 상실이 일어나므로 다치게 차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죠. 이것에 대한 불확실성과 여러 괴리로 인한 반박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한택견협회는 이러한 는질러차기 방식으로 많은 경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노하우를 쌓았으며 오늘날에도 거의 큰 문제없이 경기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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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송덕기 할아버지의 품밟기 파일은 출처가 아마 결련택견협회 원주 전수관의 이재성
관장님 홈페이지로 기억합니다.-_-;

결련택견협회는 무술적이면서도 마을끼리 하던 경기인 결련택견 둘 다를 중시합니다. 택견이 무술이었던 것으로 동네 왈패들이 싸움으로 쓰기도 했다는 것 역시 송덕기 할아버지가 직접 말씀하신 것이었고 명절날에는 놀이로 즐기기도 했다는 것도 역시 말씀하셨으니까요.(송덕기 할아버지는 놀이로 즐기던 택견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셨으나 국아사전 등에는 이것을 결련태껸, 결련태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 단체들의 수장 중에서 가장 오래 배운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해서 많은 증언과 자료들이 남아있습니다.

결련택견협회는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 최대한 따라서 몸통만 밀어차고 얼굴과 다리는 세게 차도 무방하며 품밟기도 별다른 제약이 없습니다. 기본으로 배울때의 품은 정품을 밟게 가르치며 정품과 갈지자 품밟기를 기본으로 여러 형태의 품밟기를 선행수련합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는 몇가지 부딪치는 증언의 면이 있습니다. 신문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과 도기현회장님을 가르친 방식이 다르며 일일히 세밀하게 지도를 하는 분이 아니고 제자가 적당한 수준이 되면 다음을 가르치거나 하는 분이어서 신한승선생님의 배를 살짝 내미는 품밟기도 그리 교정을 하시지 않은 듯 합니다.

또 대한택견협회에서 하는 허리를 넣어주는 품밟기의 모습도 경복궁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모양이 살짝 다르긴 하지만......

활개짓의 경우도 머리위로 번쩍번쩍 드는 활개짓은 본적도 한적도 없다고 하셨지만 한풀에서 발행한 [태견] 책에는 송덕기 할아버지가 하시는 여러 형태의 활개짓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종합해 볼 때 구한말의 택견의 방식은 평소에 한량들이 즐기던 방식이나 명절날 단체로 즐기는 방식들이 그때그때마다 규칙이 조금씩 달랐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화투가 동네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송덕기 할아버지는 16살부터 택견을 본격적으로 해서 경기도 나가시곤 하셨다니까 여러 택견에 대한 면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며 그래서 약간씩 다른 면을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원형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협회들, 그리고 배웠던 분들이 자주 모여 충돌되는 의견에 대한 연구와 조율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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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의 대표적인 풍속도인 혜산 유숙의 [대쾌도]
*출처는 인터넷 검색


택견은 무형문화재 76호로 무예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택견이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택견은 전국에 퍼져있는 무예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일단 택견의 기원에 관한 것을 아셔야 할텐데 택견의 기원은 무예가 분명합니다. 재물보의 기희편에 보면 나오는 말이 무술, 수박이 곧 오늘날의 탁견이다. 라고 하였고 송덕기 할아버지도 탁견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무술로서의 탁견이 전해지면서 그 수련방법과 대련 방법을 놀이로 즐기게 된 것이 경기화된 택견이며 그 경기 택견을 마을과 마을간의 단체전으로 하는 것이 [결련택견] 입니다.

그러면서 탁견은 무술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대명사에서 점점 특정한 기예를 나타내는 고유명사로서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탁견은 품밟기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그리고 수박과의 연관을 생각할 때 상당히 많은 전투적 기법을 포함한 무예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군영쪽에서는 꽤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송덕기 할아버지의 증언에도 별기군들이 택견을 했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그런 군영의 사람들이 지방으로 가면서 택견의 기법이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또는 서울에 살던 택견꾼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기법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단 [까기] [잽이수] 등등의 놀이가 지방에서 발견되지요. 까기는 잡기가 아니라 순수하게 발로 상대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놀이이며 잽이수는 서로 떨어져서 하는 씨름 같은 놀이입니다. 이외에도 평안도에 날파름이라고도 하는 기법도 발견되지요.

이렇듯이 지방에도 택견과 비슷한 기법이 남아 있긴 합니다.

그러나 경기로서 즐기던 결련택견은 서울에서밖에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확실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무술도 택견의 기법이고 택견은 무술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니 자신도 택견을 한 사람이다 라는 주장을 하곤 하는데요...

[탁견] 이 경기화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택견이 된 것이고 그 큰 줄기는 분명히 서울지방에서 행하던 택견과 결련택견이었으며 해동죽지, 코리언게임스 등의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택견]이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인식된 택견이라는 기예는 결국 지방에는 없는, 서울에서만 발견된 그런 고유명사로서의 기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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