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FC의 23번째 넘버링 대회가 있었던 지난 2일은 두 명의 기대주 파이터가 프로로서 첫 선을 보인 날이었습니다. 하나는 로드 FC판 TUF, 주먹이 운다 4번째 시즌의 우승자 '무호흡 파이터' 김승연과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의 삼비스트 박정은, 바로 이 두명입니다.
두 파이터는 이날 각자 승리와 패전을 기록했습니다. 케이블이라고는 하지만 국내 팬들에게는 높은 인지도를 가진 케이블 방송, 주먹이 운다에서 이미 어느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김승연은 승리를, 단순히 싱글 맘 파이터 송효경의 대체 상대로 알려졌던 박정은은 판정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소속짐 평내 킥복싱의 상담실에서 인터뷰 중인 박정은 촬영=최우석 기자]
하지만 판정패로 패한 박정은의 경기는 이날 대회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최고의 임팩트를 선사했습니다. 그녀의 종합 프로 첫 경기 상대가 바로 북미 메이저 무대에서도 활동했던 일본의 실력파 베테랑이자 체급도 한 단계 무거운 스트로급 파이트인 후지노 에미였기 때문입니다.
2주 밖에 준비를 못했던 박정은은 간단히 패배하리라는 예상을 보란듯이 깨고 능수능란한 페인트를 곁들인 한 타임 먼저 맞추는 타격으로 후지노 에미를 압박했으며, 스탠딩에서 백마운트를 잡혀 초크를 내주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않고 뜯어내는 루키답지 않은 냉철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심판 1명의 우세를 얻는데 그치는 판정패로 프로 첫 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누구나가 불리 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세계 레벨의 베테랑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차분함과 타격 실력을 보여준 기대주 박정은을 남양주시에 위치한 소속짐 평내 킥복싱(팀 스트롱울프)에서 만나 첫 경기에 감상 등 여러가지 것들을 들어보았습니다.
- 프로 데뷔 축하한다. 부상 정도는 어떤가?
* 감사하다. 다친 곳은 없고 멍만 조금 들었다.
- 경기를 치른 지 이제 일주일이 되간다. 주변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 너무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사실 좀 놀랬다.
- 프로무대에서 첫 경기를 치른 감상을 들려 달라
* 일단 저는 잘 나왔다라고 생각했던게, 역시 생각대로 '많이 배울 수 있었구나' 라는게 첫 번째였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왔다. 후지노 에미 선수의 경기 운영이라던가 의지력, 인간적인 면모에서도 많이 배웠고, 다른 선수분들 경기에서도 많이 배웠고, 데뷔 전을 부담가지고 한 거 보다 재밌게, 신나게, 행복하게 하고와서 잘 된거 같다. 너무 재미있었다. 전부 다 배울 점 투성이었다.
[격전 후 상대 후지노 에미와 인사를 나누는 박정은 촬영=윤여길 기자]
- 이번 경기에서 제일 아쉬웠던 점을 한가지만 꼽자면?
* 혜린이라는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있었는데 몸이 많이 아팠던 친구다. 경기 때 응원해주겠다고 했는데 계체 전 날에 세상을 떠났다. 한 창 연습을 하던 중이라 나중에 연락을 받았고, 결국 계체하던 날 입관을 하고 경기 당일 날 발인을 했다. 그 친구한테 꼭 이기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후지노 선수가 저한테는 대단한 선수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고 아쉽다.
- 그런 일이 있었나 친구분의 명복을 빈다. 분위기를 좀 달리해보자. 상당히 앳되보이는데 나이가?
* 96년 9월 17일생이다. 이제 딱 한국 나이로 20살이 됐다.
- 남자들도 버거워 할 만큼 격렬한 운동을 그것도 프로로 하게 됐다. 집에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시다. 어머니도 예전에 펜싱 선수고 아버지, 오빠도 한 때 운동을 하던 분들이라 그다지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었던 거고, 제가 점점 선수쪽에 욕심을 부리니 걱정은 하시더라도 할 거면 끝까지 해보라고 응원해주신다.
- 종합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된 건가?
* 종합으로 들어선지는 이제 1년이 지나 2년 째 되어간다. 그간 (아마)에서는 여자선수 경기가 별로 없어서 그다지 많은 경기를 치르지는 못했다. 본래 삼보하고 킥복싱을 같이 했는데 현재 5년째에 접어 들고 있다.
- 어쩐지 타격이 보통이 아니다 싶었다. 킥 전적은 어느 정도 되나?
* 확실하지는 않은데 11전 10승 1패인 거 같다.
- 그렇게 전적이 좋은가?
* 계속 토너먼트하다가 단 한번 은메달을 차지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헤드기어 쓰고하는 경기에서 헤드기어를 고쳐 쓸려고 손을 들었더니 레프리 선생님이 다운으로 처리하시더라. 그래도 상대 선수가 너무 잘하셨었다. 깔끔하게 진 거 맞다. 11승! 아니 10승!
- 하하 알았습니다. 삼보는 국가대표까지 했던 것으로 들었는데 이후에도 삼보는 계속 병행 할 생각인가?
* 13년도 14년도 청소년 국가대표를 지냈다. 프로가 됐다고 해서 삼보 대회를 못나가는 것도 아니고 여자는 타격이 없는 스포츠 삼보 뿐이라 타격 실전연습을 겸할 수가 없어서 좀 안타깝지만 엄연히 종합의 그라운드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 들어있고 그 실전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니 기회가 된다면 자주 출장하고 싶다. 킥복싱 대회도 마찬가지이다.
- 요즘 아무래도 MMA의 대세...라기보다 기본과목처럼 되어있는게 주짓수인데. 혹시 따로 수련하는지?
* 음...아시겠지만 삼보도 레슬링, 유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종합무술이기 때문에 하면서도 항상 감탄을 하곤 한다. 일전에 삼보에서 은메달에 그친 걸 보고 "삼보는 여기까지 인가?" 라는 느낌의 기사가 난 적이 있는데 그건 제가 삼보의 수련이 부족해서 그런 거고, 삼보가 부족한게 아니다. 주짓수를 따로 시간나서 해야 한다기 보단 삼보에서도 주짓수에서 하는 걸 다 하고 있다. 다 종합적으로 하고 있다.
- 아마추어 전적은 로드 FC 쪽 아마리그에서만 뛰었나? 아마리그 당시의 전적은 어땠나?
* 그렇다. 전적은 3전 3승이다. 센트럴리그였는데 여자 경기가 처음 생기기 시작한 2회 때부터 참가해서 2,3,4회 대회 연속으로 경기했다. 아마추어 때도 체급이 맞는게 없어서 52kg인 스트로급에서 경기를 해야 했는데 이것때문에 로드에서 오퍼가 온 듯하다.
- 경기 당시에도 후지노에 비해 상당히 몸이 작아보였다. 평체와 본인에게 맞는 체급은 뭔지 궁금하다.
* 평소 체중은 50kg 정도이고 48kg 급이 본래 활동체급이다.
[박정은의 소속팀 팀 스트롱울프의 본부인 평내 킥복싱 촬영=최우석 기자]
- 그럼 이번 후지노 전이 없었으면 데뷔 전은 48kg인 아톰급으로 할 생각이었나?
* 그렇다. 원래 연락이 왔던 데뷔 전은 8월 달에 48kg로 출장하는 것이었다. 아마추어에서도 아톰 체급이 없어서 52kg 급에서 감량하지 않고 계속 뛰었었는데 그 덕분에 이번 경기를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 고민이 좀 되지 않았나? 그냥 무리하지 말고 48kg급을 그냥 나갈까하는?
* 시합을 뛰겠다는 것에 대해 망설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시기가 좀 앞당겨 졌을 뿐이지만 본래 경기를 치를 생각이었으니까. 단지 오퍼를 받기 하루 전에 삼보를 하다 허리 쪽에 부상이 생겼는데 이 때문에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은 좀 되더라. 급하다고 하니 일단 승낙하고 상황을 볼 생각이었는데, 괜찮아 질거 같은 기분이 들더니 진짜로 차차 괜찮아졌다.
- 아무래도 상대가 세계 레벨 급의 베테랑이었던만큼 몇 가지 짚고 넘어가 보자. 후지노와의 경기 오퍼를 받았을 때 어떤 상대였는지 경기 전에 파악을 하고 있었나?
* 송효경 선수의 부상 때문에 경기 2주전에 연락을 받은 터라 그다지 연구할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전적도 그렇고 체급도 높은 선수라 한번 배워보겠다는 생각에서 오퍼를 승락했다. 후지노 선수의 경기 영상을 보고 훈련을 했던거 같다.
- 다시 이번 시합 얘기로 좀 돌아가 보자. 직접 맞붙어 보니 어떤 느낌이던가? 경기에 대한 간단한 총평을 부탁하고 싶은데?
* 다 떠나서 경기 내용에서는 정말 대단하더라.이전 경기를 동영상으로 봤을 때는 그래플링만 잘하는 선수라고 알았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타격을 더 가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어 실제 경기를 하면서 놀랐고, 하면서 배운 거 같다. 어릴 때 다친 발바닥 부상 때문에 발에 테이핑을 하셔서 킥을 잘 못쓰신다고 하던데도 그런 전적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선수인거 같다. 매너도 좋고 배울점이 많은 분이다.
- 페이스북에서도 후지노 선수랑 사진 찍은 게 있던데 얘기를 좀 나눴나?
* 끝나고 대기실에 찾아갔다. 과자를 드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퍼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하시고 첫 경기인데도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 서로서로 고맙다고하고 훈훈하게 얘기가 잘 끝난 거 같다.
- 경기 중에 가장 위기는 스탠딩에서 백을 잡히고 그라운드로 끌려들어가 초크를 잡혔던 것이라고 본다. 그 때는 어땠었나? 압박감이 좀 있었나?
* 넘어지고 초크가 들어왔는데 후지노 선수의 특기가 초크라는 것을 알았어서 방어 연습을 많이 했었다. 그립을 한 차례 뜯어내고 종료 10초전 사인이 들어왔을 때 초크가 다시 들어왔는데 다행이 약간의 틈이 있어서 어떻게 견딜 수는 있었다. 그래도 종이 살리기도 한게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그립이 더 타이트해져서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경기 중 최대위기였던 후지노의 백초크 그립을 뜯어내는 박정은 촬영=윤여길 기자]
- 타격에서는 어찌보면 후지노를 압도했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판정으로 들어 갔을 때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지? 스플릿 판정으로 패가 결정되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 솔직히 이겼다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라운드 초크도 있고, 2라운드 테이크 다운 빼앗긴 것도 있어서 경기 직후 관장님께 저 진 거 같아요란 눈빛 사인을 보낼 정도였으니까. 판정이 나왔을 때는 져서 아쉬웠다기 보단, 재밌다. 또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한편으로는 응원해준 사람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 아직 첫 경기를 치른 상태에서 성급한 얘기일 수는 있겠지만, 동양 챔피언 출신의 복서이자 두 체급 위인 김지연이나 이미 UFC로 적으로 옮긴 함서희를 제외하면 타격에서는 48,52kg 급에서는 탑 클래스 레벨의 타격으로 보인다. 두 체급을 병행할 계획은 혹시 없는지?
*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적당한 체급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뛰어봤을 때의 느낌이라던지, 선수들에게 기량이라던가 그런 것으로 봤을 때 48kg 급이 가장 맞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아톰 체급에 집중하려고 한다.
- 다음 경기는 언제쯤 가졌으면 하는가?
* 언제쯤 가지고 싶다기 보다는 공백기가 되도록 짧은게 좋을 거 같다. 다 마찬가지겠지만 경기감이 떨어지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다.
- 만약 해외에서 오퍼가 오면 뛰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나?
* 해보고 싶은 생각은 많이 있다. 로드가 허가해주고 다른 단체들도 고유의 룰과 사정이 있는게 다 괜찮다고 하면 언제든지 뛰어볼 의향은 있다.
- 소속 단체인 로드가 본격적으로 일본 진출을 발표했고 일본에는 일전에 송가연과 얘기가 오갔던 DEEP 챔프프를 지낸 걸출한 여성 삼비스트 시나시 사토코가 있다. DEEP과 계속 교류를 해온 로드 측이 그간 한국 종합에선 이렇다할 전적을 올린 삼비스트 출신의 여성 파이터가 없었던 만큼, 본인과 시나시와의 경기를 추진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매치업이 성사 된다면 어떤 경기가 될 거 같나?
* 이번 경기처럼 배우는 입장에서 경기를 해야 할 듯 싶다. 삼보를 하는 것도 봤는데 워낙 실력이 좋으셔서...이제 막 시작한데다 안그래도 저보다 잘하시는 분들 천지라...말씀대로 좀 먼 얘기이지 않을까? 하하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 이번에 데뷔 전을 하면서 한 가지 느낀게 있다. 제가 갈고 닦은 걸 최대한 보여드면 승패를 떠나서도 응원을 해주신다는 거다. 승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계속해서 발전된 경기 내용을 보여 드리는 게 목표다.
[팀 심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정은 촬영=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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