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1에서는 유난히 몸통 공격에 의한 KO가 많이 나왔습니다. 제롬 르 바네를 무릎꿇게 만든 세미 쉴트의 앞차기는 과거 레미 본야스키를 주저앉게 만들었던 전가의 보도가 되살아난 느낌이라 반가웠고, 바드 하리에게 세 번 째 다운을 뺏은 미카즈키게리(직역하면 초승달차기, 태권도 등에서 흔히 반달차기라고 함)는 그 앞차기가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는 점에서 소름마저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9월말 K-1 개막전에서 나왔던 유일한 KO승도 바드 하리의 보디 스트레이트에 의한 것이었네요. 당시 명치에 꽂힌 주먹 한 방에 상대였던 자비트 사메도프도 그대로 고꾸라진 채 일어서지 못했죠.
오늘은 세미 쉴트의 새로운 필살기로 자리잡을 듯한 미카즈키게리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 몸통 공격에 왜 그렇게 선수들이 주저앉아버리는지 그 이유부터 먼저 좀 살펴볼까 합니다. 바드 하리는 특히 올해 결승전을 앞두고 복부 단련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 건드린 것 같은 세미 쉴트의 가벼운 앞발 미카즈키게리에 무너졌죠. (김대환 해설도 무척 신기했는지 '발끝에 작대기라도 달아놓은 거 아닐까'라고 감탄하더군요.)
애초에 안면 공격이 허용되지 않는 풀컨택트 가라테 선수들의 경우도 혹독할 정도의 몸통 단련을 해서 있는 힘껏 내리치는 정권 공격에도 끄덕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급소에 꽂힌 가벼운 공격에는 여지없이 무너져내리곤 합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맞아도 멀쩡하더니, 왜 저런 공격에 다운되는 걸까?"라고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장면이죠. 특히 겉보기에도 큰 상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건지도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신기, 마법과도 같은 장면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보디 공격에 다운되는 원인을 크게 2가지로 나눠보면, 갈비뼈에 손상을 입는 경우와 내장 기관에 직접 충격을 받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건 극심한 고통이 따름은 물론 그로 인해 자율신경계가 순간적인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제 자리에 풀썩 쓰러진다거나, 호흡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당해보면 정말 괴롭고 짜증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인 것이죠. 그 심정은 그야말로 '생지옥', 비참한 지경이라서 격투가들 사이에서는 보디를 맞고 다운되는 게 가장 싫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갈비뼈를 노리는 공격이 아니라 명치나 하복부, 간이나 콩팥, 위, 창자 등 내장 기관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공격일 경우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고 때로 통증에 의한 쇼크로 실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견 상으로는 큰 데미지가 없어 보일 뿐 아니라 내장 파열과 같은 상황까지 가지 않고 자율신경계가 안정을 되찾으면 그야말로 멀쩡한 상태로 돌아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에게 큰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가장 확실하고 깨끗한 승부를 낼 수 있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무술가들 사이에서는 '정권 중단지르기에 의한 일발필도'를 궁극의 기술로 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흔히 무술가들의 전설이나 일화 등에 소개되는 '죽은 줄 알았는데, 깨어나보니 멀쩡하더라',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 불가사의한 공격' 운운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깊고 날카로운 핀포인트 공격은 장기의 일부가 강한 압력을 받아 찢어지는 '내장파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경우도 외견상으로는 이렇다 할 이상이 없지만, 내출혈을 일으킬 경우 출혈성 쇼크로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맞았을 때는 멀쩡하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 점점 체온이 떨어진다거나 맥박이 빨라지고 식은땀을 흘리는 등의 경우가 바로 이런 출혈 쇼크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간이나 콩팥(신장), 지라(비장) 등 복강 내에 고정되어 있는 장기들의 경우는 해당 부위를 손으로 눌러보거나 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지만, 위나 췌장 그리고 작은창자 등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내장파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췌장이나 작은창자에 파열을 일으키면 단백질을 소화시키는 강한 분해효소인 이자액이 흘러나와 복강 내의 다른 장기를 손상시키게 되는데, 이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역시 무협지나 옛 이야기 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느니 '몇년살'이니 하는 사례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갈비뼈에 데미지를 입었을 경우에는 내장에 직접 데미지를 입었을 때와 달리 그 순간도 고통스럽지만 지속적인 통증이 남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갈비뼈는 폐와 심장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창살 같은 구조의 지지대라고 할 수 있는데, 갈비뼈 골절이 일어나는 경우 흔히들 아시는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횡경막의 팽창에 의해 상처 부위가 압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통증을 느끼게 되죠. 그렇다고 숨을 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깁스도 할 수 없는 부위라 더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종종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이상이 없는데 분명히 통증 등의 증상은 갈비뼈 골절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미세골절이나 골좌상(뼈에 멍이 들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혹은 골절은 아니지만 갈비뼈 사이의 근육에 타박상이나 염증이 생긴 것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 타박상일 경우는 1주일 정도 후면 통증이 사라지고, 골절일 경우 2주 이상 지속되므로 일단 상태를 지켜보면서 재촬영을 하거나 해서 확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짜증스러운 부분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경우든 장기에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흉곽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한하면서 진통제 복용이나 파스 이용 등 간단한 치료와 함께 4~6주 정도 기다리면 자연 치유가 된다는 점일까요.
그러나 문제는 갈비뼈 골절에 의해 혈관 혹은 장기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도 크다는 데 있습니다. 좌우로 12개씩 있는 갈비뼈 하나하나마다 그 아래로 동맥, 정맥, 신경이 주행하고 있는데, 골절이 발생함과 동시에 혈관에 손상을 입으면 흉강에 피가 찰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골절 부위가 직접 폐를 찔러 구멍을 낼 수도 있는데요. 이 경우 호흡곤란이나 저혈압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출혈에 의한 출혈성 쇼크로 인한 심각한 위험까지도 우려됩니다.
그런가 하면 갈비뼈 중 아래 쪽 11, 12번 갈비뼈의 경우 흉골이나 위 쪽 갈비뼈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갈비뼈들과는 달리 요추 쪽으로만 고정되어 있고 앞 쪽 끝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골절을 일으킬 경우 장기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무척 높아집니다. 그 위치 또한 아래 쪽이라 위에서 언급한 소화 장기 쪽까지 손상을 입힐 가능성도 높은 편이죠.
때문에 무술이나 격투기 쪽에서는 이 부위를 노리는 공격을 주로 하게 되는데요. 옛날에 읽었던 어떤 일본 고무술 만화에서 이렇게 끝 쪽 갈비뼈를 노리는 공격을 '(상대의 몸 속에) 숨겨둔 칼'이라는 비전으로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 소재가 된 유파에서 그렇게 부르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중단 공격에 쓰러지는 경우, 쓰러트린 선수를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쓰러진 선수의 근성이나 투지가 부족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복부가 단련에 의해서 강해질 수 있는 부위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후에 부상 부위를 살펴봤을 때 큰 데미지가 남지 않는 경우 결국 순간의 통증을 이기지 못해 쓰러졌다고 생각하기 쉬웠던 탓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또한 부상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대개 단순히 갈비뼈 부상이라고만 생각해 놔두면 낫는다라고만 생각하고 선수들 스스로도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몸통 공격에 의한 데미지는 의외로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 경우 대부분 개복 수술을 해야할 필요도 있는 만큼 철저한 사후 검진과 관리로 사태가 심각해진 후에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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